작년 말쯤 제가 쓰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꽂아 다닐 볼펜 하나를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부터 쓰던 볼펜이 자꾸 부러져서 이번에는 좀 더 단단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고, 이런저런 후기를 보면서 후보를 몇 개 추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보들을 다시 비교하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고, 결국 적당히 괜찮고 쓸만한 볼펜을 하나 구매해서 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MBA 공부할 때 들고 다니던 연필통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제가 후보로 올려놓았던 볼펜이 한 자루도 아니고 세 자루나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셈입니다.
살짝 현타가 왔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내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갖춰야 할 역량, 더 많은 경험, 더 새로운 지식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지금까지의 경험과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쉬운 부분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볼펜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볼펜으로 좋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역량도 그것을 얼마나 더 많이 모았느냐보다,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고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요즘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됩니다.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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